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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후기 스타베팅 덧글 0 | 조회 266 | 2023-12-09 02:29:01
이필창  

그의 새로운 반응에 나는 희망을 보곤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릴 님께서 태어나신 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수인은 1년의 짧은 기간을 거쳐 성체가 됩니다.”

“아옹?”

“그 이전까지는 주로 짐승의 모습을 하지만, 성체가 되어 갈 무렵부터는 서서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지요. 인간으로 치자면 청소년기입니다.”

그럼 갈수록 인간으로 변하는 횟수와 시간이 많아지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의 여상한 대답에 나는 충격에 빠졌다. 충격 다음으론 절망이었다.

마멜라와 이딜로스는 내가 수인인 걸 모르는데. 심지어 이딜로스에겐 내가 수인인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아슐란의 다리를 앞발로 다급하게 때렸다. 그를 간절하게 올려 봤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아옹아옹!”

“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요?”

“아옹……!”

“……그렇군요. 하나 아릴 님. 수인은 본디 인간을 보살피기 위해 내려진 존재이기에 인간과의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으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언젠가는 공녀께서 아시게 될 것을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동반자라면 말이지요.”

나는 상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마멜라와 안셀, 요나가 놀랄 거다.

어쩌면 이딜로스는 경멸스럽게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슐란은 침잠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진정한 친구라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겁니다.”

“…….”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의 다리를 짚은 앞발도 힘없이 내렸다.

현실 앞에선 모든 이상이 무력해진다. 그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인 거다.

“아릴 님.”

“아옹…….”

“어차피 언젠가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으신 거라면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 말에 귀를 쫑긋한 나는 곧바로 고개를 홱 쳐들었다. 아슐란은 다시금 믿음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이 되는 걸 연습하십시오.”

“…….”

“연습을 통해 인간이 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그랗게 뜨였던 눈을 서서히 좁혔다.

……난 온종일을 마멜라나 이딜로스와 붙어 지내거든? 대체 어느 틈에 그런 걸 연습하겠어.

도리어 들키기만 할 것 같은 아슐란의 대책에 나는 그를 노려봤다.

아슐란은 싱긋 웃으며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노려보셔도 귀엽기만 합니다.”

“…….”

“밤을 이용하세요.”

그의 대답을 듣고 눈을 깜빡인 찰나였다. 문득 멀리서 마멜라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슐란 역시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 문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공녀께서 빨리 돌아오셨군요. 다시 만나 반가웠습니다, 아릴 님.”

아슐란은 나를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주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이 저의 별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찾아뵐 터이니 모쪼록 제가 했던 말을 유의하시지요.”

문이 벌컥 열리자 아슐란은 내게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이곤 일어섰다.

나는 마멜라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곤 떠나는 아슐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날, 나는 아슐란이 했던 말들을 돌이켜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저택의 모든 불이 꺼지자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인간이 되는 것을 연습해 보았다.

그것이 내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희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음을, 나는 아직 몰랐다.

* * *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하게 데워진 책상 위, 내 보금자리는 언제나 아늑했다. 나른하게 엎드린 나는 집무실에 울리는 고요하고 절도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걱서걱. 이딜로스가 스타베팅 움직임에 따라 흔적처럼 생겨나는 미려한 글씨를 지켜봤다. 고개를 들자 입술을 다물고 진지한 눈빛으로 연신 시선을 움직이는 이딜로스가 보였다.

무표정하게 일하고만 있는 모습인데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딜로스의 모습을 감상하듯이 바라보며 쿠션 위로 추욱 늘어졌다.

‘평온해…….’

사락, 이딜로스가 종이를 넘긴다. 다시 펜을 들어 글씨를 쓰다가 또 종이를 넘긴다. 서걱서걱, 사락, 서걱서걱, 사락, 서걱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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